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음악이 있습니다. 바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Messiah)**입니다.
공연장 입구에서 받은 프로그램북의 무게가 묵직했습니다. 표지에 새겨진 "한국교회연합 찬양대 제55회 메시아 연주회"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올해도 이 감동적인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설렘이 밀려왔습니다.
55년.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매년 12월이면 한국교회연합 찬양대가 이어온 전통. 그 무게감이 프로그램북을 통해 손끝으로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경험한 메시아 연주회의 모든 순간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헨델의 메시아, 280년을 넘어 사랑받는 이유
메시아를 처음 듣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메시아(Messiah)**는 독일 태생의 바로크 음악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F. Handel, 1685-1759)이 1741년에 작곡한 오라토리오입니다. 오라토리오란 무대 연출 없이 오케스트라와 합창, 독창으로만 이루어지는 종교 극음악을 말합니다.
절망 속에서 탄생한 기적
1741년, 헨델은 인생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오페라 사업은 연이어 실패했고, 파산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뇌졸중으로 오른쪽 반신불수가 되어 걷거나 말할 때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때 친구이자 대본가인 찰스 제넨스(Charles Jennens)가 성경 구절을 엮어 만든 대본을 건넸고, 헨델은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며 작곡에 매달렸습니다.
1741년 8월 22일부터 9월 14일까지, 단 24일.
헨델은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으며 작곡에 몰두했고, 이 과정에서 "하늘이 열리고 위대한 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게 총 53곡, 연주 시간 약 2시간 30분에 달하는 대작이 완성되었습니다.
3부로 구성된 구원의 서사
메시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따라가는 3부 구성입니다:
- 제1부 (21곡): 예언과 탄생 - 구약의 예언과 메시아의 오심
- 제2부 (23곡): 수난과 속죄 -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승리
- 제3부 (9곡): 부활과 영생 -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
오페라와 달리 메시아에는 극적인 스토리나 등장인물이 없습니다. 대신 성경 구절을 통해 '구원'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장엄하게 노래합니다.
공연장, 기대감으로 가득한 공간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특별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했습니다. 할머니와 손주가 함께 온 가족,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커플, 친구들끼리 온 중년의 그룹까지. 연령대도, 동행도 다양했지만 모두의 표정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메시아를 기다리는 설렘'이었습니다.
무대에는 대규모 합창단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앞으로 오케스트라가 악기를 점검하고 있었습니다. 한국교회연합 찬양대의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컸습니다. 수십 명의 단원들이 정갈한 의상을 입고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이미 압도적이었습니다.
프로그램북을 넘기며 곡 목록을 훑어봤습니다. 제1부 21곡, 제2부 23곡, 제3부 9곡. 총 53곡의 여정이 곧 시작됩니다.
객석의 불이 하나둘 꺼지고, 지휘자가 등장했습니다. 잠시의 정적. 그리고 지휘봉이 내려가는 순간, 관현악 서곡이 울려 퍼졌습니다.
제1부: 예언과 탄생, 온화한 감동의 시작
"위로하라, 위로하라, 나의 백성을"
웅장한 관현악 서곡이 끝나고, 테너의 목소리가 공연장을 채웠습니다.
"Comfort ye, my people" (위로하라, 위로하라, 나의 백성을)
이사야서의 예언으로 시작하는 제1부는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구약의 약속을 노래합니다. 테너의 맑고 힘찬 목소리는 마치 광야에서 외치는 선지자처럼 들렸습니다.
평화로운 목가적 선율
13번 곡 <전원풍 서곡(Pastoral Symphony)>은 메시아 전곡 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곡입니다. 관현악만으로 연주되는 이 곡은 목자들이 양 떼를 지키던 베들레헴의 들판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이올린의 섬세한 선율이 겨울밤 고요한 들판을 그려냈습니다. 평화롭고 고요한 음악 속에서, 곧 일어날 위대한 탄생의 순간을 기다리는 듯한 고요함이 느껴졌습니다.
천사들의 기쁜 소식
"그리고 갑자기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되..."
소프라노의 맑은 음성이 천사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합창. "영광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땅에서는 평화!"
합창단 전체가 한 목소리로 외치는 이 구절을 들으며, 2천 년 전 목자들이 들었을 그 찬양이 지금 이 순간 재현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제1부는 전체적으로 밝고 온화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리아, 레시타티보, 합창을 통해 다채롭게 펼쳐졌습니다.
제2부: 수난과 속죄, 그리고 할렐루야의 압도적 감동
고난받는 메시아
제2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는 멸시를 받았고 사람들에게 버림받았도다..."
베이스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예수의 고난을 노래할 때, 공연장 전체가 숙연해졌습니다. 제1부의 밝은 희망과 대비되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 구절을 듣는 순간, 헨델이 왜 이 곡을 작곡하며 눈물을 흘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부활의 승리
하지만 십자가의 고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포하는 합창이 이어집니다.
"주께서 죽음을 이기셨네!"
합창단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승리의 환호를 외칠 때, 공연장의 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할렐루야! 온 우주가 환호하는 순간
그리고 드디어, 제2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44번 곡.
할렐루야 합창(Hallelujah Chorus).
첫 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Hallelujah! Hallelujah! Hallelujah!"
트럼펫의 화려한 팡파르, 팀파니의 우렁찬 포효, 그리고 합창단 전체가 한 목소리로 외치는 "할렐루야!"
이 순간, 관객석의 모든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280년을 이어온 기립의 전통
할렐루야 합창이 연주될 때 관객들이 기립하는 전통은 1743년 런던 초연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영국 국왕 조지 2세가 이 곡을 듣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왕이 일어서니 모든 관객이 따라 일어섰다는 것입니다.
진위 여부를 떠나, 이 전통은 2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 모든 메시아 공연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도 다른 관객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서서 듣는 할렐루야 합창은 앉아서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For the Lord God omnipotent reigneth!"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 다스리시네!)
"The kingdom of this world is become the kingdom of our Lord!" (이 세상의 나라가 우리 주의 나라가 되었도다!)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왕 중의 왕! 주 중의 주!)
합창단의 목소리가 공연장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최대 음량으로 연주하고, 수십 명의 합창단원이 온 힘을 다해 노래할 때, 저는 음악이 단순한 소리를 넘어 물리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눈가가 뜨거워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280년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이 사랑해온 이유였습니다.
할렐루야 합창이 끝나고 관객들이 자리에 앉을 때, 공연장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방금 경험한 그 압도적인 순간을 곱씹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인터미션: 여운을 되새기는 시간
제2부가 끝나고 15분의 인터미션이 있었습니다.
로비로 나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할렐루야의 감동이 남아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들으니까 진짜 소름 돋았어요." "매년 들어도 감동이에요." "올해는 합창단 규모가 더 큰 것 같아요."
곳곳에서 들리는 대화들. 메시아를 처음 듣는 사람도, 매년 찾아오는 단골도, 모두가 같은 감동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제3부: 부활과 영생, 희망의 피날레
영원한 생명의 약속
인터미션 후 시작된 제3부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노래합니다.
"내가 알기에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I know that my Redeemer liveth)"
소프라노의 고음이 공연장 천장까지 닿을 듯 맑게 울려 퍼졌습니다. 이 아리아는 메시아 전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중 하나로 꼽힙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그리고 그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약속된 영생. 소프라노의 목소리는 이 희망의 메시지를 온화하면서도 확신에 차게 전달했습니다.
장엄한 아멘 합창
제3부는 제1부, 제2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지만, 그 메시지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모든 곡이 끝나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장대한 아멘 합창입니다.
"Amen! Amen! Amen!"
합창단이 끊임없이 "아멘"을 반복하며 곡은 점점 고조됩니다. 푸가 형식으로 짜여진 이 합창은 마치 끝없이 상승하는 나선 계단을 오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성부가 하나로 합쳐져 최후의 "아멘!"을 외치는 순간.
약 2시간 30분에 걸친 긴 여정이 끝났습니다.
커튼콜: 55회를 이어온 전통의 무게
공연이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지휘자가 단원들을 향해 박수를 보냈고, 단원들은 오케스트라를 향해, 오케스트라는 다시 합창단을 향해 박수를 보냈습니다. 서로를 향한 존중과 감사가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한국교회연합 찬양대가 55년 동안 이어온 이 전통. 매년 12월이면 한국의 어딘가에서 메시아가 울려 퍼지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 감동을 함께 나눕니다.
프로그램북을 다시 한번 펼쳐봤습니다. "제55회"라는 숫자가 새삼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55년.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온 이 연주회. 그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메시아를 추천하는 이유
공연장을 나서며, 저는 확신했습니다. 메시아는 누구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공연이라는 것을.
✅ 클래식 초보자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메시아는 어렵지 않습니다. 복잡한 음악적 지식이 없어도, 선율의 아름다움과 합창의 웅장함은 누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할렐루야 합창은 한 번만 들어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임팩트를 남깁니다.
✅ 종교와 무관하게 감동적입니다
메시아는 기독교 음악이지만, 그 감동은 종교를 초월합니다. 구원, 희망, 사랑이라는 보편적 주제는 누구에게나 울림을 줍니다. 실제로 공연장에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음악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 한 해를 돌아보고 위로받는 시간
12월에 메시아를 듣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새해를 향한 희망을 품는 시간. 메시아의 메시지는 이런 연말의 정서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집니다.
✅ 함께 듣기 좋은 공연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누구와 함께 가도 좋은 공연입니다. 할렐루야 합창에서 함께 일어서는 순간, 함께 온 사람과의 유대감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메시아가 남긴 것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머릿속에서는 계속 할렐루야의 선율이 맴돌았습니다.
"Hallelujah! For the Lord God omnipotent reigneth!"
280년 전 헨델이 절망 속에서 펜을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의 음악이 이렇게 오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파산과 병고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24일 동안 온 영혼을 쏟아부어 만든 이 작품은, 지금도 매년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술의 힘이고, 음악의 기적입니다.
내년 12월에도,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한국교회연합 찬양대의 제55회 메시아 연주회는 끝났지만, 그 감동은 제 마음속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내년 12월이 되면 저는 다시 메시아를 찾을 것입니다. 프로그램북을 받아 들고, 객석에 앉아, 관현악 서곡이 시작되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리고 할렐루야 합창에서 다시 한번 자리에서 일어나, 온몸으로 그 감동을 느낄 것입니다.
아직 메시아를 들어보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내년 12월을 꼭 기억해두세요.
전국 곳곳에서 메시아 연주회가 열립니다. 교회, 문화회관, 콘서트홀. 장소는 다르지만 그 감동은 같을 것입니다.
프로그램북을 책장에 꽂으며 생각했습니다.
'올해도 메시아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여러분도 내년 12월, 메시아와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할렐루야의 첫 음이 터져 나오는 그 순간, 여러분도 제가 느낀 이 전율을 경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TIP: 메시아 연주회 관람 팁
✅ 사전 조사: 전곡 연주인지 발췌 연주인지 확인하세요 ✅ 복장: 단정한 캐주얼부터 세미 포멀까지 무난합니다 ✅ 할렐루야 기립: 관객들이 일어서면 자연스럽게 따라 일어서세요 ✅ 박수: 제2부 할렐루야 후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 ✅ 예매: 12월 공연은 인기가 많으니 조기 예매를 추천합니다
이 글이 도움이 되셨나요? 내년 12월 메시아 연주회를 함께 기대하며, 여러분의 감동 후기도 기다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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